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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시

가을 시 , 가을 가을 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 두 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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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니 가을 시도 읽고 싶네요. 바람도 불고 왠지 센티해지니 마음도 싱숭생숭하지요. 오래된 시집을 뒤적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두 편을 찾아봤어요. 릴케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 독일, 이탈리아등을 방랑하며 글을 썼대요. 그의 시 가을 그리고 가을날 두 편 전문 올려봅니다.

 

가을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 시 소개


가을날

 

가을

 

잎이 진다. 멀리에선 듯 잎이 진다.

하늘의 먼 정원이 시들어 가는 듯.

거부하는 몸짓으로 잎이 진다.

 

그리고 깊은 밤중에 무거운 지구가 고독에 잠긴다.

다른 모든 별들에서 벗어 나.

우리들 모두가 떨어진다. 이 손이 떨어진다.

보라. 다른 것들을, 모두가 떨어진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이 있어, 이들 낙하를 

한없이 너그러이 그의 양손에다 받아들인다.

 

 

소감

어느새 단풍이 들더니 이내 낙엽이 져요. 길가에 쌓인 낙엽을 보며 저 잎을 누가 치울까 하다가도 이내 푸른 하늘과 쌀쌀한 바람에 세월도 덧없구나 그런 망상에 젖기도 해요.

 

가을-시-후기

 

시인도 그렇게 낙엽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겠지요. 쓸쓸한 모습에 지구가 고독에 잠긴다는 표현을 보면 가을은 확실히 고독의 계절인가 봐요. 

하지만 저는 마지막 싯구절이 좋네요. 어느 한 사람이 이들 낙하를 한없이 너그러이 양손에 받아들이는 그 마음.. 너그럽고 여유 있고 관조적인 그 시선.. 이 시의 백미는 자연의 섭리를 인자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그런 따뜻함이 아닌가 합니다.

 

가을날


가을-시-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 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길을 헤맬 것입니다.

 

주여

 

소감

앞서의 시보다 좀 더 풍성한 가을을 노래하는 이 시는 점점 저를 미궁 속에 빠지게 합니다. 과실을 익게하고 마지막 단맛까지 남국의 햇볕을 주어 익게 해달라고 노래하다가 화자는 말미에 불안 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이라고 하지요. 

아마도 지금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는 누군가(혹은 화자)의 풍요 속의 빈곤을 노래한 것도 같고, 또 아니면 긴 편지를 쓸 만큼 누군가를 혹은 세상을 그리워하며(어쩜 미워도 하며) 가을이 지고 곧 추워질 겨울의 불안감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해요.

 

가을시-추천

 

어찌 보면 20세기나 지금이나 그렇게 변한 것 같지 않은 세상인지도 몰라요. 가을은 그렇게 풍요로웠다가 쓸쓸했다가, 단 맛처럼 유혹적이었다가 차가운 바람처럼 고독한.. 그런 계절이 아닌가 싶어요.

 

오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 시 두 편 소개해 보았어요. 아무리 그래도 저 노랗고 붉은 잎들을 보면 마음이 왠지 살랑대고 한 편으론 진한 커피를 오랜만에 생각나는 그네들과 마시고 싶네요. 좋은 날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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